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빈야르 학살 (문단 편집) == 전개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9e52a844c6fb0b7c3a41ffe85b95fc85.jpg]] ▲ 바빈야르 학살사건의 주모자, 학살자인 [[파울 블로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ig-babijar14.jpg]] ▲ 1941년 9월 28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붙은 유대인 소집 전단지 키예프 포위전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당시 키예프에는 15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아인자츠그루펜은 키예프에 입성한 직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소련 내륙 깊숙한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내걸었다. 현수막의 내용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독일어]]로 적혔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아침 일찍 나와야 한다는 말도 추가했다. 그러자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약 5000명에서 6000명이 나오면 성공일 것이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서 9월 29일 아침 '''3만명'''의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을 통제하고 명단을 작성하는 일은 우크라이나 민병대가 맡았으며 이 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 경찰 연대와 정규군도 일을 거들었다. 이들의 연극이 너무도 완벽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시 외곽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갈 때까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집결 장소에 모인 유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손에 들고 있는 짐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서 내려놓도록 강제했으며 알몸이 된 그들은 줄을 지어 미리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길이 150미터, 너비 30미터, 깊이 15미터 크기의 엄청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도착하면 이미 총에 맞아 죽어 있는 이웃사람의 위에 엎드려야 했다. 그러고 나면 아인자츠그루펜 부대 대원들은 자동 권총으로 엎드려 있는 사람의 목덜미를 조준했다. 유대인들은 저항하기는커녕 공포에 사로잡혀서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다. 참혹한 광경을 보고 놀라서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런히 누워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였다고 하며 그 모습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았다고 한다. 이런 일은 하루종일 계속 해서 반복되었으며 구덩이 안에는 세 집단의 사격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 수는 12명이였다고 한다. 이들은 쉴 새 없이 유대인들을 조준하고 사격하는 것을 반복했으며 마침내 유대인들이 모두 사망하자 작업은 멈추었다. 모든 학살이 끝난 뒤 독일군 공병대가 그 거대한 구덩이의 벽을 부수자 구덩이는 이내 거대한 무덤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 1941년 9월 29-30일, 이틀만에 바빈야르 골짜기에서 살해당한 유대인들은 총 합해서 '''3만 3771명'''이었다. [[파일:external/www.deathcamps.org/bigbabijar03.jpg|width=600]] ▲ 바빈야르 학살 당시의 거대한 구덩이 [[파일:external/gerryco23.files.wordpress.com/einsatzkommando-victims-before-execution-at-babi-yar-outside-kiev-september-1941.jpg|w=640&h=400]] [[파일:external/1.bp.blogspot.com/Babi+Yar+Massacre.jpg]] [[파일:external/3.bp.blogspot.com/Babi-Yar_clip_image001.jpg]] 이후에도 바빈야르 골짜기는 학살을 위해 사용되었다. 학살은 1941년 9월 29일부터 1943년 9월 29일까지 정확히 2년간 이어졌다. 나치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유대인 외에도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집시]], [[타타르|타타르족]] 등 절멸 대상자들을 몰아넣고 체계적으로 살해했다. >2년 간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집시 등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바빈야르에서 학살됐다. 바빈야르를 유대인들만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국제적인 무덤이다. 사체의 90%가 태워져 재가 골짜기와 들판에 뿌려졌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아나톨리 쿠즈네초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